사회적 고립에 외로움이 수반되긴 하지만, 고립은 #외로움 이상의 문제다. 정신 건강에 특히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적 고립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1.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의 차이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종종 혼용되지만,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된다. 외로움은 주관적 감정으로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다. 반면 사회적 고립은 더 객관적인 상황으로 개인이 물리적, 사회적 관계에서 실제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타인과 상호작용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제한된 상태를 말한다.
사회적 고립은 자발적일 수도 있지만, 종종 원치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노년층의 경우 퇴직 후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거나 물리적 장애로 인해 사회 활동이 제한될 때 사회적 고립을 경험할 수 있다. 젊은 층이라고 해서 안심할 순 없다. 나는 30대 초중반에 암 발병으로 인해 철저하게 단절된 생활을 했다. 회사 복직 후 어느 정도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고립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혼자 있는 걸 즐기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즉 사회적 고립이 항상 외로움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전형적인 INFJ 성향인 나도, 암 발병 전에는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회식 등 사람과 여럿이 만나는 것보단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선호했다.
그러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상호작용 관계이다. 장기적인 사회적 고립은 결국 외로움과 우울증, 불안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며 외로움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악순환이 결국 개인의 정신 건강과 전반적인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고립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현재 나의 상태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적절한 대응 전략을 통해 고립을 넘어 보다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사회적 고립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이미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여러 영향을 목격할 수 있었던 항암 입원 병동]
① 우울증과 불안
사회적 고립은 우울증과 불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우리는 정서적 지지와 스트레스 해소를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대화나 가족과의 시간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와 고민을 나누고, 이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부족할 경우, 정서적 지지의 부재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없게 되고, 이는 우울증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이 약해지기 쉽다.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타인과의 교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은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키고, 이는 우울증과 불안의 위험을 높인다. 지속적인 사회적 고립은 뇌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을 과활성화시켜, 결국 장기적인 정신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2박 3일 입원 후 온전히 집에서 홀로 보내야 했던 항암 치료 중 불안 증상은 극에 달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몸 상태와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부작용 증상으로 예민하고 초조한데, 이런 나를 돌봐줄 사람마저 없었다. 병원에 문의했을 때 ‘흔한 항암 부작용’이라고 하는 것들마저 가벼이 넘기지 못했다.
② 자존감 저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들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는 자존감을 구축하고, 타인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나 동료로부터의 칭찬이나 인정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는 이러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자존감이 저하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자신을 비하하거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고, 이는 더 큰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악순환을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에 따라 자존감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나는 항암을 하며 머리카락이 몽땅 빠졌다. 탈모 뿐만 아니라 외관상 변화가 컸다. 암 투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혹은 나와 다른 암을 겪은 분은 모를 수도 있지만, 유방암은 신체 변화가 극단적이다.
어느 날인가 영화 캐릭터 ‘골룸’ 같은 머리카락에, 왼쪽 가슴은 쭈글쭈글하고 온몸에 부종 가득한 나의 모습을 거울로 대면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느껴졌다. 이전에는 혼자서도 잘 놀러 다녔는데, 그 이후 외출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 혼자 있으니 자존감은 더욱 저하되고 말이다.
③ 인지 기능 저하
사회적 활동은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향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화는 우리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뇌를 활발하게 유지시켜 치매와 같은 인지 저하 증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고립 상태에서는 이러한 자극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은 해마(hippocampus) 등 뇌의 중요 부위에 부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이는 기억력과 학습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했을 당시 이런 사례를 종종 목격했다. 입원 기간이 오래되고 친지와의 접촉이 적은 노인 환자분들의 ‘섬망’ 증상이 대표적이다. 처음엔 늦은 밤까지 괴성을 내고 돌발 행동을 하시는 걸 보고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자로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병문안 온 자녀분을 못 알아보거나 스스로에 대한 기억까지 완전히 잃은 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④ 신체 건강 악화
안타깝게도 정신 건강 문제는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고립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증가와 면역 체계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심혈관 질환, 당뇨병 등 다양한 신체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고립에 놓인 사람들은 식사나 운동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 이는 비만과 고혈압 등의 건강 문제로 연결된다.
내 경우 유방암 투병으로 인해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였던 거라, 신체 건강 악화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치료 부작용으로 인해 온몸이 엉망진창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고립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 또 무기력이 일상을 방해하는 건 분명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혹은 했던 모든 일이 ‘하기 싫다’, ‘귀찮다’를 너머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여기서 문제는 고립된 상태에서는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다. 건강 문제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지연시켜 신체 건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3. 사회적 고립 극복 방법
[이미지 3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고자 시작했던 네이버 블로그 젊은 유방암 환자가 사는 세상]
① 네트워크 확장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서 클럽, 스포츠 동호회, 요리 클래스 등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다.
물론 고립 상태에 오래 놓인 상태라면 마땅한 취미나 관심사가 없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자원봉사도 훌륭한 방법이다. 봉사 활동은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고 지역 사회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 경험상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는데 자원봉사만큼 좋은 건 없었다.
② 전문 도움 요청
심각한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면, 정신 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중요하다. 상담사나 치료사는 사회적 고립의 원인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극복 전략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고립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1:1 상담이 부담스럽다면 그룹 치료의 참여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그룹 치료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지와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룹 내에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과 지지를 받음으로써 사회적 고립감을 줄일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사회적 네트워크 확장도 기대해볼 만하다.
네트워크 확장이나 전문 도움 요청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이전에 작성한 ‘서울시 & 자치구별 고립 은둔 청년 지원 정책 총정리’ 글을 참고해 보자. 서울시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고립, 은둔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여 운영 중이다.
청년이 아니라 고령층을 위한 정책도 물론 있다. 여러 연령층과 유형을 위한 정책이 궁금하면 서울시복지재단의 ‘고립예방플랫폼 똑똑’부터 살펴보는 걸 추천한다.
③ 미디어 활용
미디어를 활용한 간접적 교류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영화, 책, 음악 등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디어를 소비함으로써 우리는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받기도 하며 새로운 시각도 트인다.
또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는 쉽게 다른 사람과 연결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며 이를 통해 지리적 한계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고립감을 줄일 수 있다. 대부분 비대면이라 관계 만들기에 서툴거나 내향적인 사람도 충분히 시도 가능하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나는 관계 맺기에 익숙하지 않다. 극 I 성향이라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암 투병으로 인한 고립과 이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을 겪으며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여러 소셜 미디어가 있지만, 그중 처음으로 시도한 게 바로 네이버 블로그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보다 글 올리는 게 어렵지 않고, 검색 기반으로 내 블로그를 방문하다 보니 나와 같은 암 환자나 고립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호르몬 치료 직후 등에는 감정변화가 굉장히 심한 데, 이때 나의 상태는 주변에 공유하기가 오히려 꺼려진다. 출근해서 얼굴을 매일 마주하는 사람에게 “나 어제 치료받고 와서 극단적 선택을 밤새 고민했어”란 말을 어떻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럴 때 블로그에 솔직한 생각과 느낌을 털어놓음으로써 나와 같은 환우분들에게,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받은 경험이 많다. 이런 건 오히려 오프라인이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④ 건강한 생활 습관 지키기
물론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면 이 세 가지가 말이다. 신체가 건강하면 정신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당장 운동만 해도 엔돌핀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한결 나아지게 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음식도 그렇다. 정말 놀랍게도 암 투병 이후 부작용으로 체중이 자꾸 늘어서 그런지 혹은 다른 요인 때문인지, 혼자 있으면 무언가를 씹는 행위를 하는 게 너무 어렵다. 그렇게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으니 기력이 없고 마음이 더 안 좋아진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시작한 게 ‘맛집 투어’다. 다행히 유방암은 술, 담배, 자몽을 제외하면 크게 식단 제한이 없다. 일부러 약속을 잡고 정말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 만족한 식사를 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에너지도 충만해진 말이다.
수면의 중요성은 누구나 안다. 나는 현재 항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으로 불면증을 앓고 있다. 호르몬의 생리적, 심리적 요인이 겹쳐 거의 잠을 못 잔다. 그래도 되도록 이른 시간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라도 있는다. 습관을 들이는 게 우선 첫 번째라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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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은 우울증, 불안, 자존감 저하, 인지 기능 저하 등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행히 고립을 극복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와 도전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연결을 회복하고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고립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사소해도 좋다.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자원 봉사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대면이 부담스럽다면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로 소통하면서 사회적 네트워크 확장도 가능하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고립 극복 전략을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며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임을 잊지 말고 도전해 보자. :)
제작: 서울시복지재단 사회적고립가구지원센터 시민홍보단 '똑똑이' 꿀단지
※이 게시물은 시민홍보단 '똑똑이'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사회적고립가구지원센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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